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림 압둘자바 (문단 편집) == 플레이 스타일 == 218cm의 신장과 긴 팔, 말랐지만 그 신장대에서 나오기 어려운 뛰어난 기동성까지 고루 갖추었고 공/수 양면에서 엄청난 기량을 선보인 선수였다. [[파일:external/24.media.tumblr.com/tumblr_ma230aPZys1rzrfkto1_500.gif|width=400]] [[파일:external/24.media.tumblr.com/tumblr_llmu4fg48C1qk2ix2o1_400.gif|width=400]] [[밀워키 벅스]] 시절의 스카이 훅 (Skyhook) 그의 주특기인 '스카이 훅'은 타점이 높고 깊은 데다 슈팅 레인지가 넓어서 막을 수 없는 신기였다. 훅 슛은 원래 골밑에서 포스트업을 하다가 한손으로 툭 던져놓거나 덩치들이 힘으로 욱여넣다시피하는 막슛에 가깝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상대 수비와 직각으로 서고, 일차적으로는 슛하지 않는 반대 손으로 수비를 견제하며 던질 수 있기에 빅맨에게는 배우면 좋은 필수 무기로 각광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압둘자바의 스카이 훅은 일반적인 훅 슛과는 달리 정말 부드러운 릴리즈를 가졌고, 레인지 역시 자유투 라인 이상의 거리에서 던져넣을 수 있을 정도로 길었다.[* 대학 시절에 이미 스스로 습득한 기술이지만,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시절의 스카이 훅이 릴리스와 레인지 측면에서 더 완성도가 높다고 하는 편이다.] 메커니즘과 레인지 자체가 블록을 하기 어렵게 설계되어 있는데, 218cm의 신장과 긴 팔을 가진 압둘자바의 높이까지 고려하면 릴리스 도중 뒤에서 긁어내는 것 외에는 거의 찍어낼 방법이 없었다. [[파일:external/fc07.deviantart.net/skyhookgif3_by_dantheman9758-d4uenol.gif|width=400]] 물론 다 못 막은 것은 아니고, [[윌트 체임벌린]]은 연속으로 블록에 성공하기도 했다.[* 게다가 그는 이미 커다란 무릎부상으로 전성기때의 운동능력을 거의 상실한 상태였다.]그러나 이 장면을 잘 보면 첫 번째 슛은 스카이 훅보단 일반적인 훅 슛에 가깝고, 두 번째는 '''골텐딩'''이다. 무지막지한 타점 외에도 바로 저 부분이 스카이 훅의 사기적인 부분인데, 일반적인 훅 슛은 타점이 위에 있기 때문에 수비가 찰싹 달라붙으면 블록이 가능하다. 그러나 스카이 훅은 타점이 골대 반대편에 있어서 포물선을 비교적 높게 그리기 때문에 수비수의 팔을 지나갈 때쯤 되면 볼이 하강 중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높이로 블록해봤자 골텐딩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 사실 골텐딩 룰 자체가 1950년대에 [[조지 마이칸]] 때문에 생겨난 지라 1960년대~1970년대 초에는 골텐딩이 지금처럼 엄격하게 불리지는 않았다.] 한마디로 골텐딩에 엄격한 현재 룰이었으면 더 막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소리이며, 위 두 번째 블록 역시 현재같으면 무난히 골텐딩이 불렸을 장면이다. 그 외에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시절의 [[데니스 로드먼]], 고대 센터인 [[네이트 서몬드]] 등 수비 실력만큼은 레전드였던 선수들이 종종 블록을 해냈다고 전해지긴 한다. 물론 통상적으로 블록이 거의 불가능한 슛임은 명확하고, 때문에 당대 뿐만 아니라 최근까지 근 30년간 많은 선수들이 연습을 시도했지만 택도 없었다.[* 심지어 스카이 훅과 마찬가지로 사기적인 스킬로 불리는 학다리 페이더웨이로 NBA무대를 점령한 [[디르크 노비츠키]]마저도 압둘자바의 스카이 훅을 연습했지만 압둘자바의 슛을 마스터 할 수 없었다고 할 정도였다.] 근래에 압둘자바가 교습다니면서 여러 센터들에게 전수하기도 했지만 실전에서 써먹은 선수는 '''거의''' 전무. 왜 '거의'냐면 딱 한 명 제대로 써먹은 선수가 있기 때문인데, 또다른 먼치킨이자 압둘자바의 레이커스 시절 파트너인 [[매직 존슨]]이 바로 그 선수이다. 물론 매직 또한 스카이 훅을 그대로 따라하진 못했고, 베이비 훅(혹은 주니어 스카이 훅)이라는 이름으로 손목을 쓰는 훅 슛이라기 보단 반대쪽으로 던지는 [[슛(농구)#s-3.4|플로터]]처럼 띄우는 스타일로 나름대로 응용버전을 개발해서 말년까지 유용하게 써먹었다. 1987 파이널 4차전에서는 이걸로 결승골을 성공시키기도 했으며, 아래의 장면이 그것이다.[* 매직은 특이하게 [[포인트 가드]]였음에도 포스트업과 골밑에서 마무리 능력, 특히 훅 슛능력이 일품이었다. 또한 포인트 가드임에도 점프슛을 거의 쏘지 못해 세트슛을 이용했다. (이와 별개로 슛 능력 자체는 좋은 편이었다) 이는 매직의 신체조건 탓인데 206cm란 신장은 지금도 [[파워 포워드]], 적어도 [[스몰 포워드]]는 보는 게 일반적인 신장이고 당시에도 빅맨을 보는 게 당연한 신장이었다. 게다가 매직은 키만 큰게 아니라 덩치도 크고 힘도 세서 득점을 할때 매치업 상대로 포스트업으로 죽죽 밀어내고 마무리를 하는 게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훅 슛 실력이 늘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소속팀 공격의 거의 전부를 본인이 시작했기 때문에, 패스를 받아서 점퍼로 마무리하는 플레이를 할 일이 없었고 점퍼를 연마할 기회도, 이유도 없었다.] [[파일:external/gifsoup.com/3818216_o.gif|width=400]] 어찌보면 218cm의 매우 가볍고 슬림했던 압둘자바의 신체조건과 더할나위 없이 어울리는 기술이었던 셈. 그는 포스트업을 하더라도 상대를 거침없이 밀고 들어가 힘으로 욱여넣는 파워형 센터와는 거리가 있었다. 무지막지한 높이로 림에 직접 내리꽂는 덩크는 매우 위협적이었지만, 림과 어느정도 간격을 두고 던지는 샷 또한 선호했으며 그 과정에서 마무리로 즐겨 사용한 기술이 바로 스카이 훅이었던 것. 또한 근거리 페이더웨이 역시 포스트업의 마무리 기술로 잘 사용했다. 무시무시한 타점 덕분에 수비수를 밀어내거나 타이밍을 어렵게 뺏지 않더라도 스카이 훅&페이더웨이 등의 골밑~숏미드 피니시를 안정적으로 구사할 수 있었으며, 덕분에 압둘자바의 로포스트 무브는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보더라도 간결하고 깔끔한 인상을 준다. 롱 훅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중거리 슈팅도 가능했고, 자유투 성공률은 커리어 통산 0.721로 높다고는 못하더라도 준 거인급 센터로서는 결코 떨어지는 수치가 아니었다. 또한 통산 정규시즌 어시스트 개수가 3.6개로 수비 리바운드를 잡고 던지는 속공플레이도 뛰어났으며 포스트 플레이메이킹에도 능했던 당시 빅맨 치곤 뛰어난 시야와 패싱 센스를 보유했었으며 당대 최고의 수비 리바운더이자 11회의 디펜시브팀 및 4회의 블록리더를 기록할 정도로[* 역대 블록 순위에서 1위인 [[하킴 올라주원]], 2위인 [[디켐베 무톰보]]에 이은 3위인데 압둘자바가 데뷔하고 4시즌이 지난 이후에 블록 랭킹을 집계했으니 상대적으로 압둘자바는 순위에서 손해를 봤었다. 안 그랬다면 통산 4000개가 넘는 블록을 하면서 압둘자바가 1위였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물론 압둘자바의 선배들인 [[빌 러셀]], [[윌트 체임벌린]]은 당시 골밑의 지배자였으니 더 높았을 수도 있다.] 수비까지 정평이 나있었으니, 그야말로 농구 역사에서 세 손가락에 꼽힐 만한 공수겸장이었던 셈. 특징이라면 상기했듯이 그는 신장에 비해 유독 마른 몸이었다는 것. 1970~1980년대 선수들의 평균 체중이 지금보다 확실히 가벼운 편이었지만 압둘자바는 그 중에서도 상당히 호리호리한 인상을 주는 선수였다. 몸무게가 225파운드 정도로 압둘자바보다 약 10cm 이상 작은 데이브 코웬스와 몸무게가 비슷했고, 마찬가지로 10cm 이상 작은 [[윌리스 리드]](240파운드)보다는 오히려 더 가벼웠다.[* 물론 리드는 당대 센터들답지 않게 프레임이 좋고 탄탄한 몸을 가진 선수였다.][* 물론 225파운드의 몸무게는 그의 NBA 데뷔 시절 즉 초기의 몸무게였고 이후엔 피지컬을 키워서 벅스 후기와 레이커스 초기 사이 즉 전성기 적에는 235파운드 근처였고 이후 골 밑에서 버티기 위해 중량하면서 대체적으로 240에서 250파운드를 유지했었다. 그러다가 87년 쯤에 즉 커리어 말년에 270파운드 넘게까지 벌크업을 했지만 여전히 압둘자바는 꽤 날씬한 모습을 유지했었다.] 이는 압둘자바가 엄청나게 장수하는데 도움이 됐는데, 당시 농구화는 현재와 달리 보호 기능이 거의 없었기에 압둘자바처럼 기본기가 뛰어나고 몸이 가벼워 발목과 발에 부담이 적게 가는 선수들이 장수에 유리했다. 실제로 그와 비슷하게 장수한 [[로버트 패리시]] 역시 230파운드밖에 안 나갔다. 다만 이렇듯 가벼운 체격 때문에 육중하고 터프하며 파워가 막강한 일부 선수들에겐 비교적 약한 편이었는데, 키는 압둘자바보다 훨씬 작지만 당대 최강의 파워 센터였던 [[모제스 말론]]이 대표적이었다.[* 1981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상대할 당시 압둘자바는 31.1점 17.7리바운드, 야투율 51.4%를 기록한 말론을 상대로 26.7점 16.7리바운드 야투율 46.2%를 기록했는데, 특히 야투율은 정규시즌 57.4%에 비해 11%나 떨어진 것이었다. 반면 말론은 정규시즌 52.2%랑 별 차이가 없었다. 이때 레이커스는 디펜딩 챔피언이었음에도 플레이오프 막차를 탄 말론의 휴스턴에게 업셋당했다. 압둘자바가 30대 중반을 넘어가고 말론은 최전성기였던 83년에는 파이널에서 붙어 말론의 필라델피아가 아예 스윕해버렸는데, 득점은 25.8대 23.5로 별 차이가 없고 야투율은 압둘자바가 오히려 55.2% 대 50.7%로 앞섰지만 리바운드에서 18개 대 '''7.5개'''로 완전히 압도당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첨언하자면 압둘자바가 말론의 밥이었던 수준은 아니지만, 상성상 말론을 상대하면 평소보다 훨씬 힘들어한 것은 사실이었다. 말론의 동료이자 또다른 레전드였던 [[줄리어스 어빙]]은 "말론이 압둘자바를 산채로 잡아먹곤 했다"라고 회상하기도 했으니, 이러나저러나 압둘자바의 최고 난적은 말론이었다. 물론 말론을 상대로 힘에서 버거워했지만 압둘자바는 [[쳇 홈그렌]]이나 [[빅터 웸반야마]]같은 프레임이 얇고 파워가 부족한 선수가 절대 아니었다. 즉 얇은 프레임 대비 힘도 좋았으며 전성기 때는 힘 좋은 센터들을 상대로 포스트 플레이로 제압하기도 했었다. 이건 말론이 나이도 젊고 전성기에 접어들 때라 한창 때였고 압둘자바는 이미 한참 전에 전성기에서 내려오면서 노장으로 불리던 시점과 맞물렸던 것이다. 루키 때인 밀워키 벅스시절에는 비록 전성기 때에 모습은 잃었지만 여전히 골밑에선 파워가 넘치던 윌트 체임벌린을 상대로 잘 막았으며 또한 포스트 공격에서도 수비 중인 체임벌린이 애를 먹기도 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